풀비스스ㅅ소 pulvissso

패치워크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잘 엮어서 뭔갈 만들어낸다면 참 좋을텐데. 이것과 저것을 어떻게 잘 엮어서 뭘 만들면 뭐가 완성될텐데. 이런 생각을 항상 하지만 그 엮는 일이라는게 만만치 않고 완벽히 잘 엮이지 않으며 어느 시점에서 손을 놓아야만 한다. 엮는 일을 하지 않은 채로 떠다니는 생각들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버스를 타거나 대중교통에서 떠다니는 생각들 중에 바로 건져 올렸으면 좋았을 어떤 생각들은 휴대폰 메모장을 켜거나 노트북 앞에 앉으면 휘발되어버리고 만다.

유례없이 많은 활자를 뱉어내야하는 시점이 왔다. 돈을 받고 쓰는 글이기에 더더욱 책임감은 막중해진다. 생각이 많고 울적해질수록 그저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영상을 보고 싶은데 하필 봐야하는 영상들 중에는 꿈도 미래도 없는 깝깝한 내용도 많다. 전두엽을 살살 녹여볼까, 하는 마음으로 한 작품을 보고 난 뒤에 보잭 홀스맨, 오피스, 은밀한 회사원처럼 OTT 서비스의 맛이 가미된 자극적이고 울적한데 웃긴 쇼를 튼다. 이미 봤지만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제발 좀 질렸으면 좋겠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내 머릿속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데 현실은 내가 쓴, 써야만 하는 활자들에 갇혀서 생각이 더욱 많아진다. 도망칠 수 없다. 무언갈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주의를 분산시킬게 필요해서 배경처럼 영상들을 틀어놓는다. 보잭 홀스맨에 등장하는 이들에게 어떤 면에서 깊게 공감하고, 그러다보면 또 울적해진다. 오피스를 보다보면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노동법이 열악하기로 소문난 미국도 한국보다 근무 시간이 짧구나 한탄하게 된다. 은밀한 회사원을 보면서는 일이 스트레스가 가득한 만큼 보상을 받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만다.

아름다운 패치워크가 만들고 싶다. 그런데 전두엽을 살살 녹이며 나를 속일 생각을 하고 있다. 캔디 크러쉬와 젤리 크러쉬를 습관적으로 하면서 보고 싶지 않지만(혹은 보고는 싶지만 도무지 지금의 마음 상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언가를) 봐야하는 무언가를 보는게 습관이 됐다. 길을 걷다가도 저렇게 4개를 연결해서, 이걸 여섯개를 만들어서. 이런 잔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나에게 글쓰기란 패치워크 만들기와 흡사한데, 과연 이 패치워크가 어떤 모양새로 완성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쓰고 싶은, 쓰려고 하는 글의 일정 부분은 보잭 홀스맨을 닮았고 일정 부분은 볼라뇨의 시를 닮았으며 일정 부분은... 이렇게 생각들에 스스로를 절이며 커피를 들이부으며 무아지경으로, 트랜스 상태로 들어가서 글자가 술술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마침 집에 우풍도 불겠다, 제자리 뛰기를 하며 무언가로부터 기를 받으려고 한다. 완성도를 떠나서 내가 맘에 드는 글이 나왔을 때는(그리고 부차적이고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지만 수상을 했던 글도) 나보다 더 큰 무언가와 연결되어서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했을 때 나왔다. 그러니까, 뭐가 됐건 다 들어와보라는 마음이다. 보잭과 볼라뇨와 다와다 요코와 그 밖의 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던 모든 창작물들이여, 밀려오라, 이런 마음이다.

12월이 끝나면 어떤 방식으로건 끝이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