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말)
“머리에 흉터가 3개나 있으시네요?” 항상 찾던 미용사분이 출산으로 일을 그만두신 뒤에 내 머리 꼴은 급격히 빠르게 지저분한 모양새가 되어갔다. 머리칼을 손질해야겠구나 싶어서, 한 번쯤은 경험이구나 싶어서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비싼 브랜드의 미용실에 갔다. 샴푸를 하며 두피 마사지를 받고, 커트를 위해 두상을 만지던 헤어 디자이너가 대뜸 내게 물었다. 순식간에 나는 내 머리의 흉터와 그 원인에 대해서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나, 맘속으로 가늠해야했다. 미용사는 머리칼 속에 감춰진 내 흉터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뒤통수의 흉터들은 농담의 소재가 된지 오래고, 나에게 흉터는 좋은 스몰토크 소재였지만 그걸 미용실에서 처음 만난 미용사분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몸의 흉터는 좋은 스몰토크 소재다. 사실, 스몰토크라기보다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과 나누기 좋은 대화 소재라고 늘 생각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사건으로부터 생긴 흉터들부터 직접 흉터내기를 선택한 타투, 피어싱은 언제나 좋은 소재였다. 연애 상대와는 서로 알몸인 채로 침대에 누워 아까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몸 구석구석의 사소한 흉터들을 짚어보며 이건 언제 왜 생긴 상처인지, 이 흉터가 생길 무렵의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얘길 듣는 게 재밌었다. 사람의 육체는 흥미로운 역사였다. 꼭 연애나 성애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일단 처음 만난 사람에게 타투나 피어싱이 있다면 내 마음 속의 호감도가 수직 상승했다. 살면서 어쩌다보니 생긴 상처가 아니라 직접 고르고 골라서 새기고 뚫은 상처라면 얘기를 나누기가 훨씬 편했다. 어쨌든 우리에겐 정신이나 영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담고 있는 육체라는 공통분모이자 극명하게 다른 경험과 역사가 있었으므로.
아무튼, 나는 뒷통수의 흉터가 아문 이후에 만난 사람들을 누구보다 웃기기 위해 근황을 물어보면 주량으로 허세를 부리다가 기절하여 흉터가 생긴 일화를 우스꽝스럽게 늘어놨다. 내가 흉터로부터 완전히 극복되었음을 그렇게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것은 유머의 소재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얘기한 뒤통수의 흉터 중에 하나가 생긴 경위는 어이가 없을 정도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전 직장 동료들과 신나게 먹고 마신 뒤에 2차로 어디를 갈까 하고 있었다. 소정님은 주량이 어느 정도 되세요? 저는 한 소주 3병까지는 괜찮아요. 그리고 정확히 5초 뒤에 나는 어지럽다며 쓰러졌다고 한다. 다행히 일행이 빠르게 지혈을 해주고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다만 코로나 시국이었고, 술을 마신 모두의 체온은 뜨끈했기에 나는 홀로 응급실에서 기나긴 여정을 통과했다. 각종 검사와 어린 아이의 비명소리, 할아버지의 곡소리와 더불어 피가 튄 원피스를 입고 파리한 얼굴로 수액을 맞는 젊은 저혈압 쇼크 여성의 역할을 하며 응급실의 풍경이 되었다가 나왔다. 3시간 정도의 각종 검사를 마치고 머리를 꼬맸다. 정확히는 의사가 내 머리에 스테이플러를 6방 박았다. 음, 종이에만 쓰는 줄 알았건만 사람의 머리에도 스테이플러를 쓰더군요! 와하하. 대충 이런 식이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내 안에서 다소 길을 잃은 채로 방황한다. 이 부분은 아직 스몰토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길거리에 취객조차 없는 그날 새벽, 응급실에서 나와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세상이 너무 고요했다. 멍하니 응급실 입구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데 바로 맞은편 건물에서 고요하지만 존재감 있게 빛을 내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장례식장이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지금 뒤통수가 찢어진 이 몸을 저기에 버려두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 재활용 수거함에 이 몸을 넣어두고 정신만 빠져나와버리고 싶다. 그러면 나는 머리도 감을 수 있고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생활할 수 있을 텐데. 찐득한 피가 딱딱하게 말라붙은 머리를 달고 그 언젠가처럼 (다시) 2주 정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내 육신이 감옥이 되었다. 영혼을 뺐다가 꼈다가 하는 기술이 왜 아직 상용화가 안 되었을까. 아 그치. 만약에 그렇게 되면 빈부격차와 각종 부정부패로 세상은 너무 드러워지겠지. 내가 경솔한 생각을.
이후 이 일을 소화시키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한 가지 이상한 법칙을 발견했는데, 큰 흉터가 생겼던 해는 내가 타투를 받지 않은 해와 일치했다. 이게 다 지금까지 타투가 현침살을 막아줬는데 내가 타투를 안 받아서 그래, 하고 농담을 하면 친구들은 농담을 한 게 민망할 정도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헛소리한다고 나를 타박했다.
비록 미용사분께는 “아 네넹, 넘어져서 생긴 흉터예요.” 하고 재빠르게 넘어갔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는 흉터에 얽힌 이야기를 좋아하고,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준비만 되어있다면. 그리고 내가 충분히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어쨌거나 나는 냄새와 악취, 피와 고름의 시간을 건너온 피부를 좋아한다. 그리고 여러 의미에서 흉터를 가진 사람들, 자신의 흉터를 자신의 언어로 쓰다듬어 보는 사람들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