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비스스ㅅ소 pulvissso

으아아아아아아악

연말이고, 생각이 많고, 모든 감정이 극에 달했다. 오늘은 푹 잘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아서 결국 다 씻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12월 안에 마무리 해야하는, 마감해야하는 글이 있는데 나는 과연 그걸 무사히 쓸 수 있을까?

첫째로, 불태워버리고 싶고 영영 잊어버리고 싶고, 하지만 그게 없으면 내가 아니게 될, 졸업한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자꾸만 돌아온다. 다 잊고 살고 싶은데, 도무지 잊을 수 없게 돌아온다. 그때 그 인간을 확실히 보내버렸어야 하는데. 뭐가 부족했던걸까. 왜 가해자들은 부끄러운줄 모르고 자꾸만 나대는걸까. 사람들과 케이크를 나눠먹고 재밌는 얘기를 한창 나누는 시간으로만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즐거운 하루에 이 즐거움을 왠지 모를 죄책감으로 만드는 소식이 도달했다.

둘째로, 11월부터 12월까지의 흐름에서 계속 드는 생각이 있다. 나 영화 사랑하나? 1년 남짓 영화과를 다녔을 때 내가 느낀 영화는 이랬다. 영화는, 아니 영화 현장은 파괴하고 훼손하고 가상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현실을 함부로 대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모 영화의 GV에서 배우들이 촬영 현장이 너무 즐거웠고 안전하다고 느꼈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다. 그런 현장이 가능하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고 연기를 하는 게 최고의 선을 실천하는 것 같다는 배우의 말을 듣고 놀랍고 부러웠다. 촬영 현장에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을 수 있어서 좋고, 이야기를 만들고 영화를 찍는게 최고의 선일 수 있는 현장. 당연히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짐작은 했지만 어딘가에는 진짜 저런 영화 현장이 있구나. 영화가 뭐라고 이런 짓거리를 하는거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 영화 현장이 있구나. 저 감독님의 영화 현장을 경험했다면 나는 다른 방향으로 살고 있었을까.

그리고 약 한 달 뒤에 나는 하루, 몇 시간 뿐이었지만 실제로 이런 현장을 경험했다. 촬영 현장에서 맡은 역할이 달랐기 때문일까?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게 좋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고, 내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게 좋았다. 내가 소진되거나 사용되거나 마모된다는 느낌이 없었다. <남색 대문>이었나, 주연 배우가 여기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평생 살고 싶었다, 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런 현장을 만드는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수도 있겠구나 느꼈다.

나 사람 좋아하나? 나 영화 좋아하나? 나 영화 사랑하나? 아 젠장. 이런 마음이었다.

세번째로. 의심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뭔갈 믿는다는 기분을 느끼며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사랑하는걸 사랑한다고 힘껏 외치고 싶다.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 그러면 안돼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내 마음을 틀어막고 감추고 아쉬워 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걸 다 쏟아내면 어떻게 될까.

이런 밤이면 따뜻한 개의 온기가 그립다. 내가 꽉 끌어안으면 마지못해 순순히 안겨서 가볍게 한 번 한숨을 쉬던 개의 온기가 그립다. 이런 밤이면 그 누구도 집에 가지 않고 그 누구도 잠들지 않고 계속해서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 포옹을 나누고 말과 말로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안전함과 다정함을 느끼고 싶다. 그러다가 스르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곁에서 안심하며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