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의 장래 희망은 대부분 한 글자짜리 직업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궁했다기보다는 장래 희망란에 직업 하나와 이유를 하나 쓰게 만든 탓이 크다. ‘미래 희망 직업’에 한없이 가까운 ‘장래 희망’이 우리들 머릿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우리의 장래 희망은 직업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고, 목표 또한 직업을 떠나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먼 미래에 있는 직업 대신에 성적과 대학이 당장 개개인의 가치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미래는 계속해서 유예되었다.
10대 이후에도 우리는 평생 자발적으로, 습관적으로 삶을 유예시킨다. 시험만 끝나면, 면접만 끝나면, 체중을 얼마 정도 감량하면, 돈을 얼마만큼 모으면, 뭐에 당첨이 되면, 뭐에 뽑히면 등등. 유예에서 벗어난 순간은 있을지언정 유예에서 벗어난 생애는 없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유예’라는 말이 들어가는 모든 창작물이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밴드 9와 숫자들의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 ‘유예’부터, 어떤 작품의 대사나 문장에 유예가 들어가면 일단 마음속으로 밑줄을 쫙쫙 그었다.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빛을 잃은 나의 공책 위에는
찢기고 구겨진 흔적뿐
몇 장이 남았는지 몰라
무얼 더 그릴 수 있을지도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중
하나의 색만이 허락된다면
모두 검게 칠해버릴거야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끔
연체되었네 우리 마음은
완전함은 결코 없다고 해도
부족함을 난 견딜 수 없어
- <유예>, 9와 숫자들
<잠자리 구하기>를 관람하고 나오면서 다시 ‘유예’라는 단어가 마음에 콕 박혔다. 20살이 되어 ‘어른’이 되면 금세 잊어버리고 싶어지는, 잊어버리는 막막하고 끝없는 10대 시절 유예의 기간이 가감 없이 다큐멘터리 안에 살아 있었다.
성적과 대학을 벗어나서는 자신의 ‘가치’를 찾기 힘들고, 자신의 ‘부족함’을 견디기 힘들어 죽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며, 질문이나 학교 밖의 삶은 허용되지 않도록 만들던 시기.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생님의 ‘보살핌’에서 제외되는 시기. (학교 밖의 청소년들에게 사회가 어떤 곳인지는 모두 경험했거나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유예'와 더불어 장래 희망, 다른 말로 하자면 직업이 무엇인가에 대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 장래 희망란을 보면 대부분 이렇다. 경찰관, 간호사, 영화감독, 소방관, 음악가, 작가, 기자 등등. 이 직업에서 하는 일은 뭐라고 한마디로 정리해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직업들과 더불어 모든 직업인의 삶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하다.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누군가 질문하면 거기서부터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한다. 아, 무슨 무슨 뭐 아시나요? 그거를 어떻게 저렇게 다루는 직무인데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요.
여러 의미에서 스스로를 보살피기 위해, 생계를 유지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프리랜서이건 회사에 속하건 직업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의 직업들은 단어 하나에 담길 수가 없다. 오로지 돈 때문이지, ‘직업’은 ‘진정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야, 라고 말하면서 나의 일부분을 갑자기 지워버리고 싶지도 않다.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계속 품고 살던 중 2022년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에서 직업과 관련한 적확한 개념을 만났다.
"어떠한 ‘직업’을 갖는 사람이 된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며, 실제로 인간은 어떠한 ‘장소’에 놓이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냄새나는 장소, 평화로운 장소, 언어의 폭력에 내몰리는 장소, 추운 장소, 보호받는 장소 등 다양한 장소가 있다."
<지구에 아로새겨진>, 다와다 요코
어떤 사람들과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대부분의 ‘직업’이라 불리는 것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생각해 보자면, 우리의 10대 시절 직업은 사회적 통념에 따라, (학교에 다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학생’이라고 한 단어로 정리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놓인 ‘장소’의 맥락은 더욱 복잡했다.
평화로운 장소는 절대 아니고, 언어의 폭력에 꽤 자주 내몰렸던 것 같고, 냄새도 났던 것 같다. 그곳이 물리적인 공간이건 아니면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들이건.
그리고 우리는 '학생'이 아닌 다른 직업을 절실히 원했다. 모든 유예를, 막연함과 불안함을 끝내버릴 수 있는 그런 직업을 원했다.
“죽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게 뭐야?”
사람은 복잡한 존재고, 사람이 지나온 시기도 마찬가지다. 뇌가 생존을 위해 많이 지워버리는 걸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제는 구체적인 것들이 많이 희미해진 10대 시절을 청춘이니 젊음이니 하면서 무조건 아름다웠다고 칭송하고 싶지 않다. 10대 시절의 우리는 각자의 고민과 문제를 안고 있었고, 때로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엔 나의 일만으로도 너무 벅찼다.
그저 <잠자리 구하기>에서처럼 불안과 막연함을 느낄 때,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너무 버겁고 싫어서 차라리 내 존재를 없애버리고 싶었을 때 “죽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종종 물어봐 주는 서로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싶다.
진로 고민은 10대부터 시작해서 70까지 간다고 했던가. 단어 하나로 정리된 장래 희망 선택하기를 종용받던 시기는 끝났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내가 어떤 장소에 놓이고 싶은지, 그걸 끊임없이 생각하고 싶다.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싶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도 항상 만나면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얘기하는 친구들과도 함께 고민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도 최대한 다정하게 묻고 싶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장소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죽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게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