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비스스ㅅ소 pulvissso

감정 알아차리기

사람들이랑 노래방에 다녀왔다. 옛날 노래들을 잔뜩 부르는데 한 분이 '가사가 너무 슬퍼'라고 말했다. 노래방에 가면 너무 힘들지 않고 적당히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곡들을 늘 부른다. 그 노래들은 거의 늘 똑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가사를 그다지 인식하지 않았는데, 과연 다시 들여다보니 슬픈 노래 가사들이었다.

산책을 할 때면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올라온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감정들을 꺼내놓으려고 하면 갑자기 이 감정들은 어디론가 쏙 숨어버린다. 숨바꼭질 하듯이 하나씩 찾아내야 하는데, 해야하는 일들이 앞서서 어느새 감정 알아차리기는 뒷전이 된다.

의사는 빨리 나아지고 싶으면 마음을 편히 먹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하는데 그게 어디 맘처럼 쉬운가. 그리고 현대인 중에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 스트레스 받고 있어.' 라고 말한다면 길 가는 모든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며 '나도.'하고 외칠 것이다. 그만큼 스트레스는 너무 흔한데 과연 이게 맞는걸까 싶다. 스트레스는 너무 흔한 것이고, 스트레스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말해봤자 다같이 아픈 처지라는게.

스트레스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해봤다. 먹고 싶은 것이나 필요해서 사고 싶은 것을 3일 이상 고민하지 않고 먹거나 산다. 하루에 한 번쯤 산책을 한다. 선선한 온도의 방에서 하루에 한 번쯤 낮잠을 달게 잔다. 책을 읽다가 잠든다. 가끔 뭔가를 쓴다. 가끔 극장에 간다. 무엇에 쫓기거나 강박을 느끼지 않고 적당히 느긋한 속도로 살아간다. 정신 차려보니 숨을 안 쉬고 있다던가 자세가 잔뜩 틀어진 채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지 않다. 그리고 어쩐지 스트레스 없는 삶의 풍경 한 곳에는 털 동물이 있다. 낮잠을 잘 때 팔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숨을 느끼고 싶다.

이런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려면 모든 사람은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구나. 아무런 야망이나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게 욕심이구나. 어딘가에 이름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일은 도파민을 주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도 준다. 어차피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라면 사소한 일상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절박함 같은 거 가지지 말고 좀 더 막 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