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비스스ㅅ소 pulvissso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얼마 전에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작성을 마쳤다. 무슨 일을 했는지 그야말로 아름답고 보기 좋게 포장한 결정체를 만들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숫자와 실적을 중간중간 촘촘히 때려 넣으며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은 유튜브나 SNS에서 사람들이 "억대 연봉인 내가 퇴사한 이유" 뭐 이런 글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요새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이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은 취직을 비롯한 여러가지에 대입할 수 있다.

회사를 다시 들어간다면 일하고 싶은 회사, 재밌는 직무만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만약 회사가 미국이 본사인 빅테크인 경우 트럼프 취임 이후 Diversity&Inclusion을 자기네 회사 홈페이지에서 삭제하지 않은 곳에만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를 부정하는 회사에는 갈 수 없다. 이렇게 까다롭고 여러가지를 염두에 둘 거라면 애당초 쉽게 쉽게 구직에 성공하리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신머리가 너덜거리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 3주기 모임에서 친구들, 지인들과 만났다. 서로가 기억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다양한 모습을 나눴다. 분위기를 타며 오로지 나만 알고 있던 그 사람의 모습을 처음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좋은 모습, 안 좋은 모습 모두 다. 그 사람의 좋은 면도, 안 좋은 면도 다 존재함을 알면서 기억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말하기는 남은 사람의 특권이다. 그 사람이 완벽하고 사랑으로만 가득한 존재라서 사랑했던게 아니니까. 나나 다른 사람들처럼 완벽하지 않으면서도 여러모로 애쓰며 살아가려 했으니까. 그토록 바라던 것을 거머쥐었지만 여전히 우울했고, 성취와 자기 효능감이 그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기가 나이 든 모습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한 때는 그랬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람보다 한 살 한 살 더 먹어가는 내가 있다. 이제는 카페인을 멀리하고 채소를 챙겨먹고 운동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때다.

우리가 그 사람에게 함부로 실망하거나 우상화하거나, 무언가의 대표로 만들지 않은 것처럼 나도 그러한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대신 싸워줄 사람, 무언가의 피해자나 대표자, 고발자로만 기억되고 싶지 않다. 기뻤다가, 오만했다가, 우울했다가, 사랑했다가, 좀 저질스러운 구석이 있었다가, 속물적이었다가, 이런 모든 모습들이 기억되고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다. 나와 내 친구들, 지인들이 그에게 그러했고 그가 우리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구직을 위해 준비하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구직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굴하지 않되 내 모든 강점과 셀링 포인트를 어필해야 하고, 내가 회사에게 잘 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가 잘 맞는지 알아보는 자리지만 일단 그들이 계약서를 건네야지 나에게 선택권이 생기고. 이런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계속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구직은 일종의 체스와 비슷한 것 같다. 구직을 지우고 그냥 사는 걸 대입해도 될 것 같다. 다만 내가 체스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다. 어떤 종류의 말이 될지는 모르겠고, 이번 움직임이 다음 움직임을 결정한다. 이 직무에서 저 직무로 건너가는 가능성을 고민하고, 그런데 이 직무로 가면 다른 가능성은 얼마간 사라지고. 나는 비숍인지, 룩인지, 나이트인지 헷갈린다. 졸병이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무시무시한 퀸이 될 수 있을까. 아니 되어야만 할까.

그 사람이 완전무결하고 완벽한 사람이어서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자리는 내게도 해방감을 주었다. 완전무결하고 완벽하고 무해한 사람이어서 사랑하고 싶지 않다. 완전무결하고 완벽하고 무해한 사람이어서 사랑받고 싶지 않다.

얼마전에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사람들과 새벽까지 노래방에서 노래 불렀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락스타인 사람들과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역시 스트레스 해소에는 노래방이 최고구나 느꼈다. 신나는 순간순간을 열심히 모아야 한다.

최종 면접 준비를 너무 하기가 싫어서 요새 느낀 감정들을 쭉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