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비스스ㅅ소 pulvissso

고문과 고통과 고난(draft)

거짓말(?)이 섞인,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탐구 중인 글

불판 위에서 데인 몸을 꿈틀거리고 진물을 흘리던 개불의 움직임이 기억났다. 조개구이 불판을 갈던 중에 생으로 먹히기 위해 잘려진 개불의 몸에 불판이 살짝 스쳤다. 스친 부분의 색이 살짝 변하고 개불이 움츠러들었다. 어쩐지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끔찍함을 느끼면서 두피가 따끔거렸다.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그냥 먹히는 것보다 더 최악의 일이 개불에게 일어났는데 그 모습에 고통을 짐작하면서도 고통을 말하는 움직임을 침착하게 매혹되어 바라보았다. 산 것들을 구워 먹는 마당에 무엇이 더 끔찍한지, 그런 것을 깊이 생각하기 이전에 개불의 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혹시 나는 악당으로 태어난 걸까? 개불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고작 8살인데, 끔찍함을 음미하고 있는 걸까? 우연히 개불을 마주할 때마다 그런 섬뜩한 예감을 느꼈던 일이 기억났다.

고통을 향한, 정확히는 고통 받는 육체를 향한 매혹은 계속되었다. 12살 무렵, TV에서는 한창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방학을 맞아 TV 앞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던 오빠와 재방송 되는 그 드라마를 봤다. 독립투사들이 순사에게 고문당하는 장면에서 화면 오른쪽 위에 동그랗게 15라는 숫자가 떴다. 너는 15세 이하니까 쿠션으로 얼굴 가려. 오빠가 소파에 있던 쿠션을 건네며 말했다. 기껏해야 16살인 오빠는 보호자를 자처하며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독립투사 역할을 맡은 배우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고 달아오른 인두로 살을 지지는 치이익 소리가 났다. 고기를 불판에 올릴 때의 소리와 똑같았다. 지금 배우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인두가 닿은 피부는 어떻게 됐을까. 끔찍한 수렁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을 느끼려, 쿠션 뒤에 펼쳐질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이런 장면에 한없이 마음이 두근거리는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고 생각한 오빠가 비웃었다.

영화관 매표소에서 일하면서 이런 순간들이 쌓였다. 손님이 좌석을 고르기 위해 아래쪽에 있는 모니터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면 그들의 정수리와 가르마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머리칼 사이를 가르는 하얀색 선. 피부의 다른 부위와는 달리 햇볕을 거의 받지 못해 놀라울 정도로 하얀 선. 소위 진상들에 시달리고 유독 피곤한 날이면 그 하얀 가르마가 눈에 잘 들어왔다. 리필 안 되는 팝콘을 리필 해달라며 소리 지르고, 규정 상 안된다고 답하면 짐짓 근엄한 얼굴로 이름표를 째려보며 이름이 뭐냐고 묻는 사람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담담한 말투로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알려줄 때. 기한이 지난 할인 쿠폰을 쓰겠다고 들고 와서 해줄 수 없다고 말하자 눈 앞에서 쿠폰을 박박 찢고 면전에 그걸 던질 때. 그럴 때마다 업무에 쓰려고 손에 항상 들고 있던 볼펜의 감촉이 잘 느껴졌다. 저 정수리를 볼펜으로 찍으면 어떨까?

고요한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서 TV를 종일 틀어뒀다. 케이블 티비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그때 그 드라마를 계속해서 재방송 하고 있었다. 다시 편집을 한 것인지 아니면 기억의 왜곡인지 드라마는 생각보다 전개가 빨랐다. 주인공의 유년 시절에 소중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죽었고, 주인공이 각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욕과 비극도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기승전결의 확실한 전개 속에서, 드라마의 뚜렷한 메시지 안에서 주인공의 삶은 이리저리 조각났다가 다시 붙여지며 선형적으로 충실히 나아가고 있었다. 주인공과 접점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전체 전개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고문을 당하던 그 인물이 내가 발톱을 깎으며 심드렁하게 티비를 보던 중에 붙잡혔다. 일본 순사 역할을 맡은 배우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심문했다. 심문을 통해 정보를 알기 위함은 그냥 핑계고 고문을 앞두고 신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잔인하게 굴 기회를 얻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도대체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톱을 깎다 말고 화면을 쳐다봤다. 부러 비열한 미소를 짓는 일본 순사 역할을 맡은 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그 다음 불에 달군 인두와 그걸 들어 올리는 손. 다가오는 고통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애써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독립투사 역할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 그 다음 장면은 맥 빠지게도 고문이 벌어지고 있는 건물의 외관을 비추며 비명소리만을 들려주었다. 12살짜리 아이가 쿠션 너머를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시시한 장면이었다.

*들은 피드백 중에 기억나는 것: - 자기 탐구적인 글 같다, 여성 화자의 경우 자기가 피해자일 때의 글이 가장 많은데 가해자성이나 폭력성을 탐구하는 글이라 흥미로웠다 - 끝까지 가도 좋을 것 같다(?) -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들을 취사 선택하는 것에 관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 - 영화관의 에피소드와 개불 에피소드의 고통이 다른 것 같다 vs. 완전히 같은 결의 고통이 아니라 입체적인 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드라마 속에서 각종 고통을 겪는 주인공과 개불이 겹쳐 보였다. - 화자가 고통을 당하는 입장에 가깝다고 느꼈는데 고통을 주는 입장으로 시선을 가져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