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떠올리면 모순된 감정과 생각이 동시에 올라온다.
지난번 상담에서 선생님이 만약에 구직이나 커리어에서 한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뭘 포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돈이라고 답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돈이 좀 적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때는 그게 순도 백퍼센트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로? 정말로 포기할 수 있어? 정말로 그걸 놓을 수 있어? 이런 질문이 마음 속에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가 한다. 돈이 너무 좋다, 살면서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가능하게 해줬다, 힘든 시간이 너무 길었는데 이 정도의 경험을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는게 어때. 이런 마음과 동시에 그 돈이 그냥 굴러들어오는 돈이 아니며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스스로를 혹사했다고, 게다가 소위 맘에 드는 '연봉'을 주는 기업들은 반드시 구린 구석이 있고 돈을 벌면서 어쩐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을 느끼게 마련이다.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을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 안에 욱여 넣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고액의 연봉을 받는 건 과거에 내가 한 고생에 대한 보상이고,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된 것도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지만 인생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저 두 개 사이에는 전혀 없다. 그저 내가 과거의 고생이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정신 승리를 하기 위해 그리 떠올린 것뿐이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있지만 실제 삶은 좋은 사건 이후에도 계속 삶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에 입학했지만 거기서 최악의 사건들을 겪었고, 인생에서 벌 수 있으리라 생각치 않았던 돈을 벌었지만 일하면서 스스로를 좋아하기가 힘들었다. 합격통지서를 보던 순간, 계약서에 적힌 숫자를 본 순간, 이런 장면들에서 끝나지 않은 이상 이것들이 무슨 고생에 대한 보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타이틀이나 숫자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삶의 방식을, 어떻게 살아야 스스로를 좋아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한다고 절절히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들의 시선을 다 거둬내도 내 안에서조차 합의되지 않는 갈라지는 마음들이 있다.
살면서 스스로가 욕심이 많다거나 야망이 있다거나 야심이 넘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열심히 산다는건 더럽게 피곤하고, 안 죽고 살아가는 것도 용한데, 그냥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을 잔잔하게 하면서 적당히 게으르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승진이나 큰 돈이나 상 같은 것에 큰 뜻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새 내가 느끼는 나는 굉장히 욕심이 많다. 왜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면 되잖아? 무슨무슨 회사에 가면 그럴 수 있잖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데, 그런 나에게 딱밤을 한대 놓고 싶다.
며칠전에 지인분이랑 만나서 이상한 얘기하면서 이상하게 사는 게 너무 재밌다는 얘기를 했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이상한 얘기의 재미는 중독적이라, 논리와 이성의 세계를 영영 떠나고 싶어진다. 이력서를 쓰고 자소서를 쓰는 건 숫자와 측정 가능한 지표로 나를 파는 일이라 극도로 논리와 이성의 세계에 스스로를 담가야 하는 일이고, 괴롭다. 그러니까 이런 두서 없는 잡념이 담긴 일기라도 쓰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 것이다.
- 뇌를 거치지 않고 쓴 부정적인 일기는 하루만 지나도 꼴보기가 싫어진다. 나잇값을 하자고 다짐하며 과거를 떠올리며 울적해질 것 같으면 앞으로 할 무언가에 녹여내거나 뭐 그러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