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에너지만 쓰면 균형이 무너진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주기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산책, 요가, 헬스 등 대부분은 혼자서 하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두 사람, 혹은 여럿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즉흥 컨택, 즉흥 컨택춤 등, 부르는 이름이 아직도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게 끝내주게 재밌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지인분이 진행하시는 즉흥 춤 잼에 갔고, 살면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랑 몸을 부대끼며 춤췄다. 머릿속에서 단어와 단어 사이를 뛰어다니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끌고 다니기만 하다가 말이 아닌 몸으로 먼저 만나다니! 컴포트 존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경험이었다. 그때 해방감과 재미를 느끼며 다시 해보자고 생각하다가 1월에 한 달 단위의 정규 수업을 들었다.
누구와 춤을 추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몸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다르다. 상대방의 그날 컨디션도 굉장히 잘 느껴진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누구와 춤을 추느냐에 따라서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와 체구가 비슷한 사람과 출 때는 서로의 몸에 기대어서 흐물흐물 움직이고 몸의 균형을 조절한다. 나와 체구 차이가 큰 사람과 출 때는 상대방을 견고하게 지지해 주거나 내가 마음 놓고 무게를 실을 수 있다. 주저함이나 망설임, 신남 같은 감정도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말은 어느 정도 거짓말이 가능한데 몸은 도무지 숨겨지지 않는다. 컨디션이 저조한 날은 바로 들통이 나고, 그러면 그 낮은 컨디션에 맞춰서 상대방과 춤춘다. 컨디션이 좋은 날도 혼자서 앞서 나가며 움직이는게 아니라 상대방의 움직임을 기민하게 감지하기 위해 몸의 감각에 집중한다.
생각이 사라지고 그냥 여기에 누군가와 있음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명상 같기도 하고(근력을 꽤 요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듀엣/트리오 춤이기도 하고,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비유 같기도 하다. 한 사람의 영향만으로는 춤이 되지 않고, 두 사람이 계속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신호를 주고 받아야 한다. 어떻게 움직이건 그건 춤이고, 망한 춤은 없다. 서로의 움직임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상대방에게 신호를 얼마나 잘 보냈고 받았는지의 차이만 있다.
작년 여름, 처음 즉흥 잼에 갔을 때 누가봐도 전문 무용수인 분들이 몸 푸는 광경을 보고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나보다 생각하며 떨었지만.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자기 몸을 통해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오랜 시간을 거친 훈련을 요하지는 않았다. 물론 타인의 몸과 만나는 몇 가지 방식을 미리 알아두면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걸 정규 수업을 마치고 알게 됐다.
몸으로 말해요는 한 사람이 언어나 개념을 설명하려고 혼자 민망하게 몸을 움직이는게 아니라 타인과 닿아 있을 때 가능한 경험이었다. 몸치라서 항상 춤추는게 싫었는데 춤추기 위해 움직이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올해 가져갈 중요한 키워드로 춤을 추가해볼까 한다. 춤이라니! 춤 동작을 따라가지 못해서 자괴감을 느꼈던 과거의 나는 짐작도 못할 일이다. 뭐가 나에게 어울리는지 아닌지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움직이는게 도움이 된다. 나의 새로운 면, 새로운 욕구를 발견하는 건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가능하다!
마지막 수업을 듣고 약간의 근육통을 느끼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