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센터, 아이토키 영어 수업, 심리 상담 등등. 나는 뭐 하나 괜찮다 싶은 걸 찾으면 주구장창 그곳만, 그 전문가만 찾는다. 여기저기 어디가 더 괜찮은가 비교하고 찾아다니는 시간이 피로하고, 한 번 시작하면 어느새 일상의 루틴이 된다. 그래서일까, 어느 시점이 되면 그분들이 업계를 떠나거나 이사하신다. 이번에는 상담 선생님께서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신 걸 계기로 상담이 마무리 됐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정말 솔직한 이야기를 약 2년간 듣고 조언해주셨던 상담 선생님과의 상담 종료는 살짝 감동적이고 왠지 눈물이 날 것 같고, 다음 장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주었다.
대학생 때 상담 센터에 6개월 다닌 뒤로 상담 없는 인생을 보내다가 다시 상담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은 회사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완전 잊고 있었는데 마지막 상담에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상담 비용은 비싸기 때문에 지원이 없이는 어렵지 않을까 하면서 잊고 살다가 금전적 여유가 생긴 뒤로 나를 내팽개치지 말고 살아야겠다, 다짐하면서 다시 시작했었다. 그런데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이던 회사 생활은 타의로 끝이 났으니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에 선생님이 나를 만나면서 했던 생각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다. 물론 내 말을 통해 나를 알게 되신거니까 나의 추구미(?)라고 할 것이 은연 중에 반영되었을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록해두고 싶다. 가족 일, 회사 일, 레이오프, 반려견의 죽음, 이번에는 나의 레이오프, 또 다시 가족 사건, 기타등등. 저 중간중간에 버무려진 망한 연애와 망한 데이트.
땡땡씨는 나 혼자 잘되면 그만인 사람이 아니고, 불의에 행동하는 사람이예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알아가려고 하는 사람이고 현명한 사람이예요. 결국 원하는, 잘하는 일을 하시게 될 거예요. 어떤 방식으로건 원하시던 해외에도 나가게 되실 것 같아요. 땡땡씨의 상황이 신중하게 선택을 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점차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실 거예요. 언제든 마음이 힘들어지면 다시 상담도 시작하시구요. 나를 방치하지 말고 잘 보살피며 살아가세요.
선생님의 말이 다 날아가버리기 전에 휴대폰 메모장에 기억나는대로 적었다. 마지막이라고 립밤이랑 핸드크림을 주셨는데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이게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다.
새해가 된 뒤로 꿈 일기를 열심히 쓰려고 노력 중인데, 메모장에서 지난번에 일어나자마자 기록한 꿈 일기를 다시 발견했다.
"꿈에서 무슨 도도새가 있는 알 수 없는 섬? 같은 곳에 방문했다. 늦은 밤에도 영화를 상영해주는 곳. 삼촌이 등장해서 돌아갈때 쓰라고 돈을 주셨다."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런 생각과 동시에 큰외삼촌이 또 꿈에 등장했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전부 꿈에 등장하면 좋지만 주기적으로 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정해져있다. 그런데 삼촌은 이상하리만치 꽤 자주 등장하신다. 꽤 예전에 망한 연애를 하는 때에 꿈에 등장하셔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조용히 쳐다보고 가신 적이 있다. 가끔 등장해서 돈을 주거나 담배를 피우다 가신다. 돌아갈때 쓰라고 돈을 주셨다니 저승에 갔다가 돌아온걸까, 이런저런 해석을 해본다. 삼촌 그래도 폐암으로 돌아가셨으니까 담배는 끊는게 좋지 않을까요. 저승이라서 상관없나요.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꿈에서 깬 뒤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다 합치면 꿈에 꽤 자주 등장하시는 것 같다.
상담 선생님의 말을 적고 꿈 일기를 읽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링크드인 메시지가 하나 왔다. 내가 좋아하는 어플을 개발한 개발사의 COO다. 잘못 읽은 건지 얼떨떨했다. 내가 원하는 직무랑 교집합이 많은 직무에 새로 사람을 뽑는 중인데 내가 궁금하다고 직접 만나서 커피챗을 하고 팀 소개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일희일비하지 말자, 그러면서도 아니 일희를 안하면 어떻게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 그냥 계속 기뻐하고 계속 실망하고 그러면서 살아가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냥 만나서 재밌게 얘기하면 되는거지, 반드시 저기서 일해야 하고 그런 건 아니잖아, 응.
그 어플은 신기하게도 상담 선생님과 나눴던 이야기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어플이다.
지금까지의 상담 내용을 복기하면서 깨달은건 이렇다. 이번주에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은 다음주에 더 큰 일이 몰려오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니까 사람은 계속 불행하게 살아야해,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에는 계속 정신없이 새로운 사건과 일들이 몰아닥친다. 그러니까 그냥 순간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감정에 솔직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계속 좋지도, 계속 나쁘지도 않다. 가끔 신기할 정도의 우연이 겹치기도 하고, 그 우연이 반드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경험이 새롭게 계속 쌓이는 걸 즐겨보자.
이런 정신 사납고 결론도 없는 일기를 쓰는 것도 그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