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게 너무 좋은 기간이 돌아왔다. 아마도 날씨 덕분인 것 같다. 부디 푹푹 찌는 무더위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거나 빠르게 지나갔으면. 곧 있으면 이 동네에서 산 지 1년이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사시는 이 동네는 요새 산책을 나서거나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갓 지은 쌀밥의 단내, 모기향 냄새, 콩나물국 냄새, 참기름 냄새 같은 음식 냄새가 난다.
이전에 살던 동네와 다른 점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노년층 주민의 실종 알림 문자가 재난 문자와 같은 형식으로 온다. 인상착의와 이름, 나이가 적힌 문자다. 이럴 때 이웃들의 나이대가 높다는 걸 실감한다.
동네 자체는 무척 마음에 든다. 하천과 산이 가깝고, 조용하고, 산책하기 좋고, 집세도 그럭저럭 서울 안에서 저렴하다. 놀러 가기 좋은 조금은 소란스러운 동네들을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다. 잔잔한 하루를 보내고 설거지를 하거나 사람들과 왁자지껄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귀가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 좋다. 오래되고, 오래된 만큼 세월이 느껴지는 풍경이 좋다.
다만 재개발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동네라서 언제까지 여기서 지낼 수는 없겠구나 싶다. 2년을 채우건, 더 일찍 떠나건, 재개발이 시작되면 아마 내가 좋아하는 이 동네의 느낌은 많이 사라질 것 같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큰외삼촌의 존재감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동네라서 좋다.
일단 5월까지만 살아보려고 법적 효력이 있는 유서를 적었는데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어서 안 보이는 서랍에 넣어뒀다. 자필로 쓰고, 지장과 도장이 찍혀 있고, 쓴 날짜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유서를 적으면 언제 돌연사를 하더라도 재산(...)이 어디로 가버릴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아있는 돈을 다 탈탈 털어서 써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남이 사는 동네가 종종 궁금해지는데, 요새 궁금한 곳은 너무 넓고 많은 동네를 포함한 도시나 섬이지만, 오키나와랑 베를린이 궁금하다. 오키나와는 좋아하는 캐릭터,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가족, 기타 등등 너무 많은 좋아함이 연루된 곳이라 궁금하다. 베를린은 언젠가 한 번은 가게 되지 않을까 막연한 짐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