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그만 인정하려고 한다. 진짜진짜로 지쳤다. 아마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살고 있겠지만, 겉으로 웃으면서 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래서 그럭저럭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대부분의 경우 성공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속임수가 슬슬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머리가 찢어져서 봉합하고, 감지도 못하는 피딱지 앉은 머리로 열심히 일해도 결국 회사는 나를 내보내고. 면접을 본 회사들은 제때제때 합격 불합격 여부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자조 농담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돈은 언제 벌 수 있는 건가? 언제 돈 때문에 불안하지 않을 수 있지? 언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언제 내가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퉁퉁 부은 얼굴로 아침에 면접을 보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으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용을 쓰면서 살아야 하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내 경험치를 늘리고 나를 위해 일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생각이 엇나간다.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이러는 거, 월급을 위해 일하는 거, 전부 우습고 헛되게 느껴진다.
반려견이 떠나고 3일 정도만 휴가를 쓰고 업무에 복귀했었다. 노트북 앞에서 매일 울었지만 그래도 일했다. 그랬었지만 회사는 결국 나를 내보냈다. 당연하게도. 그게 아마 비즈니스 마인드, 계산기 두드리는 마음이겠지.
대학생 때도 머리를 봉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놈의 그 빌어먹을 책임감 때문에, 월세 때문에 커리집 알바에 계속 나갔다. 피떡이 된 머리를 못 감아서 모자를 쓰면서 일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에 잘렸다. 누군가가 싼 똥으로 막힌 변기를 못 뚫어서.
마음이나 몸이 덜그럭거릴 때도 일했지만 고용주들에게 그딴 건 상관없다.
자기 연민은 꼴사납다고 생각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계속 밀려 들어온다. 돌봐야 할 반려견도 없고, 딱히 목적의식도 없고, 돈을 못 벌어서 괴롭다면 애당초 그 돈을 왜 벌어야 하는가? 미움과 원망과 원한과 서러움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지금 죽으면 악귀가 되겠구나 싶다.
반려견이 죽은 뒤로 모든 게 엉망 같다.
좆 같은 농담을 들었을 때 척수 반사로 좆 같은 농담 하지 말라고 말하는 능력을 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