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구직 활동을 하다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친언니가 구직 활동을 하면서 이리저리 치이던 일이다.
나보다 6살 많은 언니와 나는 차마 사이가 늘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사이다. 언니가 사춘기일 때 나는 한창 얄미운 9살이었고,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언니가 수험생이었고, 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낼 때 언니는 학업과 알바에 치이는 대학생이었다. 우리의 사이가 늘상 좋기엔 서로가 여러모로 짊어지고 있는게 많았던 것 같다. 6살 차이니까 아무래도 언니와 나의 관계는 주로 언니의 일방적인 윽박지름이 있었고,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동네 남자애들로부터 다굴(?) 당하는 나를 구해줬다고 말하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고 그런 건 원래 받은 사람은 기억이 안나는 법이다. 사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헷갈리는 자매 사이는 둘 다 20살이 넘어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안정기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나름대로 집안의 막내라서, 엄마와 언니는 항상 나보다 연장자고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고, 연약한 모습보다는 어떻게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기억하는 이들의 첫 모습은 강한 모습이다. 당연하게도 어린 가족 앞에서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했을 것 같다.
점점 머리가 크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긴 했지만, 처음으로 엄마나 언니가 무너지는 모습을 본 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냥 울거나 이런 정도가 아니라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 말이다.
언니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구직이 맘처럼 풀리지 않아서 고생했다. 졸업을 유예하고 자격증을 따고, 이런저런 경험을 쌓기 위해 교육원을 다니고, 전공을 살리기 위해 잡지사에 취직하거나 출판사의 편집자가 되고 싶어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격증이니 인턴이니 이런 걸 전혀 하지 않았던 예술 대학 졸업자로서는 매우 낯선 풍경이다.)
그런 언니가 규모가 크고 인지도가 높은 만화 출판사의 최종 면접까지 간 것은 아마 엄청난 기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출판사의 최종 면접은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맥주 같은 술을 곁들여 마시는 회식과도 같았다. 평소 주량도 쎄고, 술도 잘 마시는 언니였지만 너무 긴장해서 그랬는지,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하고 술을 주는대로 다 마셔버린 바람에 말 그대로 뻗어 버렸다. 그 자리에 있던 가장 덩치 큰 사람에게 업히다시피 부축 받으며 집에 귀가한 언니는 무슨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취객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부축해 준 사람, 엄마, 그리고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을 출판사 관계자들에게도 말했을, '죄송합니다'를 말하는 언니의 모습이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렇게 죄송한건지, 뭐가 그렇게 간절했던건지.
술에 뻗은 언니가 부축을 받으며 귀가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엄마는 집 밖으로 나가서 기다렸고,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조악한 해장국 같은 걸 끓였던게 기억난다. 당장 뻗은 사람이 해장국 같은 걸 먹을 수 있을리 없지만 뭐라도 안하면 미칠 것 같았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언니는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고, 그 뒤로 언니가 울었는지 어쨌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던 게 지금까지도 기억난다. 그때의 언니는 어떤 마음으로 버텼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가족들이 어린 가족에게 감추고 감추던 연약한 모습은 왜 이토록 아플까. 정신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으로 이어지면서 두피가 쑤신다.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게 참 신기하면서도 답답한 것 같다. 구렁텅이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대신 산책하면서 오리들을 보고, 의식적으로 맛있는 걸 먹고,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를 빼먹지 않고 하고, 침구를 돌돌이로 털며 살아가기.
나는 이제 노력하기가 싫은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이 들다가도 결국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털고 일어나야 한다.
다 덤벼라. 아니, 진짜로 다 덤비지는 말고. 좀 살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