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어느 겨울날의 스웨덴 출장 후기)
이른 아침, 대형 마트로 가는 길을 무작정 걷는다. 얼음이 낀 거리는 미끄럽고, 장갑을 낀 두 손은 패딩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었다. 길에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출근을 위해 길을 나서는 사람이 몇 보인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아침 7시부터 마트에 간다. 특별히 사고 싶은 것은 없다. 그저 마트 구경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마트에서 무얼 사는지, 마트에서 무엇을 사 먹을 수 있는지 구경하고 싶을 뿐이다.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를 천천히 가르며 나아가는데 갑자기 뭉근하고 따뜻한 냄새가 한 골목에서 새어나온다. 아마도 유치원으로 보이는 그곳에서는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냄새가 난다. 따뜻한 오렌지 빛이 하얀 건물 창 사이로 새어나오고, 어린이들이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들이 언뜻 보인다. 소화시키기 쉬운 따뜻하고 어딘가 분유 냄새와도 비슷한 그 냄새가 갑자기 나를 바깥의 존재로 만든다. 추운 바깥에서 나는 따뜻한 안을 슬쩍 훔쳐보는 사람이 된다. 이런 스프의 냄새, 끓는 국물의 냄새, 포근한 온기를 담은 보살핌의 냄새를 나는 이전에도 맡은 적이 있다.
어릴 적 다녔던 유치원에서도 이런 냄새를 항상 맡았었다. 북유럽의 유치원에서 만드는 요리와는 전혀 다른 요리였겠지만 근본적으로 그 냄새는 같다. 따뜻한 온기가 나를 에워싸고 이내 나는 그 냄새의 정체를 식사 시간에 마주한다. 그리고 그걸 입에 넣어 삼키고 소화시킨다. 유치원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15살이 넘었던 강아지는, 그러니까 강아지가 아니라 개였지만, 아무튼 어린이들에게는 강아지였던 그 개는 노화로 죽었다는 사실까지 기억이 난다.
마트에서 초콜릿이며 크래커를 사들고 나와 호텔로 돌아갈 때도 그 유치원에서는 그 냄새가 난다. 오렌지 빛으로 빛이 나는 건물, 누군가가 먹어주길 기다리며 끓는 국물들, 누군가가 돌아오길 혹은 찾아오길 기다리는 장소. 10대 때 한창 재밌게 했었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생각난다. 딸을 다 키우고 나면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나는 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다. 마지막에 뜨는 이미지는 딸과 내가 살던 집이다. 해질녘, 창문에서 오렌지빛이 새어나오는 모습을 밖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아마 게임 속의 딸은 귀가하면서 저 모습을 보았겠지.
오렌지빛으로 빛나는 창문은 내게 돌아갈 곳, 귀환할 곳, 나를 기다리는 곳을 연상시킨다. 그런 빛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 깊이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안심하는 내가 있다. 유치원 마당 한쪽 구석에 아주 어린 아이가 하나 멀뚱히 서 있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아이의 눈은 새벽녘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이곳에서 어린이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어릴 적 이웃집으로 피아노 레슨을 들으러 다녔었다. 그 집에 갈 때마다 우리 집과는 전혀 다른 냄새에 압도당했었다. 환기시키지 않은 무겁고 눅진한 공기, 코를 찌르는 섬유유연제의 향기, 향수 냄새, 무겁고 머리가 아프지만 어느새 익숙해져서 나도 그 안의 일부가 되지만 다시 방문하면 어김없이 공기의 무게와 농도가 느껴지던 공간. 살짝 세월의 때가 탄 흰색 레이스로 덮여진 피아노. 마요네즈와 케챱이 섞인 무겁고 달콤한 냄새. 어쩌면 오렌지빛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것은 이 빛이 노을을 연상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을은 귀가 시간과 연결되어있고 귀가 시간은 말 그대로 돌아갈 곳을 연상시킨다. 마음이 불안해진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혹은 돌아갈 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이튿날도 역시 나는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걷기를 선택한다. 아침 7시에 푸르스름한 거리를 걸으며 어제의 그 유치원 앞을 지나간다. 유치원에서는 여전히 어제와 같은 냄새가 나고 어제와 같은 빛이 난다. 나는 큰 창을 통해 보이는 유치원 내부의 풍경을 의심스러워 보이지 않을 만큼만 훔쳐본다. 그리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유치원 마당에서 어제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작은 아이를 본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수프를 먹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저 아이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호텔로 돌아와 간식거리를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고 침대 위에 몸을 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