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비스스ㅅ소 pulvissso

눈물

얼마전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살면서 내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짓 중에 하나가 많은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인데, 눈물샘이 조절되지 않았다. 일종의 기쁨의 눈물, 지금까지 누적된 부담감과 안도가 새어나가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울면 바로 편견을 가진다. 연약하고, 감정적이고, 자기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독립적이지 않고,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타인들 앞에서 우는 사람을 보면 알게 모르게 편견을 가졌던 것 같다. 어쩌면 일종의 자기 혐오였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우는 일은 집에서 혼자 조용히 해야하는 일이었고, 지금껏 그랬다. 일터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담담하고 멋지게 마무리하고 내려오고 싶었는데 울고 말았다.

선입견에 꼭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찜찜했다. 동시에 너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지 말아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조언들을 들으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강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복잡한 사람인데. 한 편으로는 한 번 운 것 가지고 이렇게 오래 생각할 일인가? 그냥 좆까 정신으로, 어쩌라고 눈물이 났는데 뭐 이렇게 넘어가는게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최근의 눈물 말고 타인들 앞에서 울었던 일은 약 2021년이었던 것 같다. 인생의 최저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친구는 죽었고, 공연을 하는데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았고, 코로나 때문에 공연들은 줄줄이 취소됐고, 막 시작한 회사 생활에서는 뭔갈 해내고 증명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때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눈물이 났고, 나중에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상황을 끌어가려는 것 같은 모습에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때 이후로는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으리 다짐했었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덫이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 말자고 생각했고, 친한 친구도 굳이 다른 누군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그렇다면 나는 울면서도 뭔갈 하는 사람이고 싶다.(애당초 나 자신이 뭔데? 매 순간순간 분열되는 내 머릿속 생각들을 마주하다보면 단일하고 고정된 나 자신 따위는 없다.)

담담한 사람도 멋지고 솔직한 사람도 멋지다. 두 모습 다 되지 못하고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낑겨 있는게 아닐까.

드라마, 영화에서는 이제 (젊은) 여자가 우는 게 너무 클리셰라고 생각해서 주로 중년의 남자나, 남자가 운다. 이제는 한 물 간, 성별 편견을 강화시키는 것 같은 스스로의 존재에 치를 떨면서도 어쩌겠어 이런게 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