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셋집을 구하고 독립을 앞두었을 때, 나보다 몇 개월 먼저 독립했던 친구가 해준 조언이 있다. 마의 369를 조심하라고. 3개월, 6개월, 9개월마다 혼자 살기의 힘듦이 올라온다고 했다. 혼자 살기 3개월 차, 나는 너무 편안하고 즐거웠다. 6개월 차에도, 조용한 집이 좋았다. 9개월 차에는 혼자 사는 게 진짜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주년을 향해 달려가는 10개월 차. 나는 처음으로 고독감을 느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다시 이부자리에 눕는 순간까지 혼자구나,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혼자 살더라도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고, 구글미트나 줌으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니까 사람이 그립지 않을 줄 알았다. 집에서 다른 사람의 존재감과 기척이 성가시다고만 느꼈는데 그 성가심이 일종의 환기 작용을 해줬던 거구나.
생각해 보면 혼자서 산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했을 때는 하우스 메이트가 있었다. 그때는 하우스 메이트였던 친구와 내가 서로를 돌봤던 기억이 난다. 끼니를 거르지는 않는지 서로 확인하고, 뭔가 얘기하고 싶으면 방문을 두드리기만 하면 됐다.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할 때면 근처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 가자고 서로를 집 밖으로 잡아끌었다. 게다가 학교 근처였으니 종종 공강 때문에 시간이 애매해진 친구들이 집에 찾아왔고, 술을 마시다가 차가 끊긴 친구들도 찾아왔고, 하여간 이래저래 계속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엄마와 살 때는 생활 패턴은 다를지언정 가끔 같이 식사하고, 가족이 귀가하길 기다리면서 간식을 부탁하고, 집안일도 일종의 분업이 가능했다. 그리고 무기력할 때도 게으름의 최저치가 그리 낮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로 혼자다. 대학생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고, 집에 손님이 그렇게 자주 찾아오지 않으며, 학교 생활이나 회사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경험과는 다르다. 집을 예산이 허락하는 선에서 취향껏 꾸며두고 희희낙락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새삼스레 타인의 기척이 그립다. 이건 외출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는 다르다. 집에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거의 언제나 있을 거라는 감각이 없는 채로 사는 게 단점이 있을 수도 있구나. 그런 걸 새롭게 배웠다.
서울로 올라와서 혼자 살던 지인이 하우스 메이트들을 만나 5명이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 정신건강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 지인이 외향인이고 잘 맞는 방식을 찾았구나, 다행이다,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 지인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사이 '돌봄'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을 때 고개를 끄덕였으나 진정으로 중요하구나, 온 마음을 다해 느끼는 건 요즘이다.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혼자 사는 건 필요한 경험이라고는 생각한다. 청소, 빨래처럼 기본적인 집안일은 물론이거니와 하수구 청소와 각종 수리, 계량기 관리,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를 확인하고 제때 납부하는 것까지. 예전에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기 조금 어려웠는데 이제는 점점 근접해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하우스메이트를 찾거나 쉐어하우스에 들어가거나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좀 수월해지면 유기견을 입양할까 싶다.
반려견이 살아있을 때는 내가 돌보는 보호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반려견도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돌봤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지나는 시간은 여태껏 살면서 집에서 받는 돌봄의 힘이 최소한인 시간이고, 어쩌면 혼자 사는 게 적성에 그리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 조언을 해줬던 친구에게 하소연하듯이 안부차 연락했다. 무슨 생리 주기도 아니고, 자기도 혼자 살기의 힘듦이 왔다가 갔다가 한다는 답이 왔다. 친구에게 이런저런 팁을 전수받으며 완전히 혼자 사는게 적성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타인과 살 것인지를 모색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