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대기업에서 대규모 정리해고와 사업 철수를 경험한 이후로 조금 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소규모 사회적 기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다른 결의 함부로 대하기를 겪었다. 오로지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유, 환경에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허영심으로 선택한 소규모 기업은 내 예상과는 아주 달랐다.
첫 출근을 하자마자 나를 반겨준 것은 아무런 맥락도 설명도 없는 이미지 파일 뭉텅이였다. 관계자에게 정리해서 보내주어야 한다는 이미지 파일을 나는 무엇인지도 모른 채 던져지는 몇 가지 단서들만으로 짜맞춰야 했다. 모바일로 하는 방 탈출 게임도 이보다는 더 친절할 것 같았다. 그리고 오가며 마주치는, 소위 동네 주민들이라는 사람들은 나를 어딘가의 직원이 아니라 동네 아는 어린 여자애처럼 대했다. 그리고 같은 상근자들 이외에 가까이서 업무를 위해 협업해야 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징글징글했다.
“어머머, 나는 ‘선생님’이 대학교 갓 졸업하고 들어온 사람인 줄 알았어. 어머머, 용감하다. 지금 본인 나이면 한창 경쟁이 심한 곳에서 치열하게 살 때인데. 이런 결정을 하다니 정말 ‘용감’하다. 나는 젊을 때 왜 못 그랬을까~”
호칭만 선생님이지 완전히 나를 얕잡아보고 있었다. 대학교 갓 졸업하고 들어온 사람인 줄 알았다는 저 말은 내가 동안이라는 칭찬이 아니라 네 나이에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는, 돌려서 꼽주기 기법이었다. ‘용감’하다는 말로 애써 포장한 그 말은 실은 무모하다는 의미였고, 그들에게 나는 어느새 돈도 없고 일자리도 못 찾아서 이리로 흘러들어온 젊은이가 되어있었다. 설령 정말로 그런 젊은이라 하더라도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됐다.
“선생님, 이 동네에서 월세로 살아 전세로 살아? 얼마 주고 살아? 아이고, 월세 너무 비싸다. (내가 강남권은 좁은 원룸에 80 이상이라고 답하자)그럼 여기 이사 오기 전에는 그 돈 주고 살았어? (내가 이 동네는 서울에서 투룸에 이 정도면 저렴하다고 말하자) 아니, 선생님 투룸 살아?”
고작 나를 한 두 번 봤으면서 저런 질문을 던지는 그들은 시시각각 재단하면서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돈도 없고 변변한 일자리도 못 구한 젊은이, 또는 부모가 다 해준 강남 키드(그들의 짐작과 달리 안타깝게도 나는 내 돈으로만 독립했으며 강남 키드도 아니었다), 여차하면 그만둘 준비를 하는 MZ 젊은이, 돈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조금쯤은 막 대해도 되는 젊은이. 그야말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본인들의 마음속에서 나를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나도 한 속물적인 사람이므로, 그냥 지금껏 다닌 회사의 이름을 그들의 앞에 던져주거나 졸업한 학교의 이름을 던져줄까 아주 잠깐 솔직히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저 사람들이 입을 다물까? 게다가 지나간 ‘좋은 나날’을 오래도록 우려먹으며 한때 자신이 ‘잘 나갔’음을 어필하는 꼴불견인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럼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 아닐까? 그러다가 점차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수순을 밟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어버리면 어쩌지? 그런 공포가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환경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사회적 기업에 들어왔으니 내 마음에도 허영이 끼어 있었다.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 전 세계 뉴스에서 언급되는 악의 축 같은 대기업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 그런 곳에 소속되고 싶다. 하지만 주말에도, 늦은 밤에도 업무 카톡이 울렸다. 입사한지 2주차에 내가 속한 업무 카톡방은 15개, 누군가 질문을 하면 ‘OO쌤이 아실거예요~’라는 말이 나왔다. 환경을 위한 활동을 한다고 하지만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소위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야 하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행정상의 문제로 참여자가 8명인 수업에 6명이 오지 않는 일이 잦았다. 그럼 역시나 행정적인 이유로, 어딘가의 관계자에게 수업에서 만든 완성품 사진을 보내야 하기에, 그래야 돈을 떼먹지 않고 재료 준비를 했다는 증명이 되기에, 6명분의 예쁜 쓰레기를 내가 구석에서 급히 만들었다. 오로지 행정 처리를 위한 사진을 찍으려고.
조금 더 속물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음료 직원 할인도 없고, 사내 카페(?)에서 커피도 다른 손님들처럼 무조건 제값 주고 사서 마셔야 하며, 첫 출근을 했을 때조차 상사와 팔천 원짜리 백반을 더치페이 하고 나니까 내가 얼마나 속물적인 사람인지 알게 됐다. 아니 보통은 첫 출근했을 때 첫 끼니는 상사가 사주는 거 아닌가? 비싼 브런치도 아니고 일인당 팔천 원짜리 한식인데, 그걸 자기 것만 계좌이체 하고 너네도 계좌이체 하면 된다고 말하는 상사의 얼굴을 어이없어서 쳐다봤었다. 나의 과거를 돌아봤을 때도 신입 분들에게 법인 카드로 먹을 걸 사드리거나 그럴 상황이 아니면 사비로라도 뭘 샀던 기억이 났다. 이건 단순히 잘 대해주는 것 이상의 내 ‘가오’ 문제이기도 했으므로.
물론 영리 목적으로 이익을 왕창 내는 대기업과 사회적 기업을 비교하는 게 온당치 못한 처사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딱히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 사회적 기업을 보며 마음이 와장창 부서졌다. 첫 출근한 날 대뜸 운전할 줄 아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처음 한두 번만 차로 데려다주더니 그 이후부터는 내가 무거운 짐을 들고 대중교통을 타고 외근지로 이동해야했다. 외근은 많으면 하루에 두 번, 적으면 한 번, 일주일 내내 있었다. 깊이 생각할 에너지도 없이 퇴근길에 그냥 몸이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헷갈려서 눈물이 났다. 씻고 누워서는 무료 사주 어플로 6월~7월의 운세를 읽었다. ‘당신의 경우에는 쉽게 들어간 곳은 쉽게 나올 수 있습니다. 후회할 수 있으니 경쟁률이 높은 곳에 지원하세요.’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이력서도 넣고 면접도 봤기에 쉽게 들어갔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사람이 너무 부족해서 누가 오건 이미 두 팔 벌려 삼킬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겠다. 사회적 기업의 상근자들은(오며가며 마주치는 동네 주민이나, 업무 차 협업해야하는 속물적인 몇몇 중년과 달리) 일단 기본적으로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중한 업무와 벌려 놓은 일들 때문에 도무지 누구에게 인수인계를 하거나 업무 전달을 할 여유가 없다. 비영리 기업이니까 당연히 수익도 많지 않다. 그러니까 신입 사원에게 첫 끼로 백반을 사주거나 할 여유도 아마 없을 것이다. 성평등이나 성중립 화장실, 환경 관련 이슈에 빠삭하다. 아마 이분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소모품처럼 대하는 행동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아주 큰일이라며, 상근자가 한 명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짜놓은 모든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며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듯이 말했다. 물론 정말 큰일이 난 건 맞을 거다. 그리고 이 사람도 사람이니까 의도한 게 아니더라도 감정적인 말이 나왔을 거다. 하지만 이 순간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문장은 ‘내 알 바예요?’였다.
근무 일주일 차에 소위 멘붕을 겪은 나는 그만둘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결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쿠션 멘트를 깔고 에둘러서 인수인계가 없어서 힘들고 업무 전달을 더 자세히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수...... 또는 상사는 바쁘다는 이유로 대화를 피하고 있었기에 어렵사리 잡은 기회였다. 이후 그 사람은 어색하게나마 업무의 맥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OO쌤, 이게 첫 번째 사회 생활이예요?”
분명 이력서에도 4년의 경력을 적었고, 면접 때도 물어봐서 4년의 경력 동안 무얼 했는지 대답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게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무언가 불만을 가진 것 같은 신입에게 사회생활이 처음이냐고 묻는다. 고작 신입을 두 명 뽑았으면서 그들에 관해 기억하는 바가 없다. 그러면서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기관인 것처럼 자신들을 설명한다. 아마 그건 실현된 현실이 아니라 추구미에 가까웠던 것일까?
돈도 복지도 미래도 없는 것 같지만, 일단 ‘사람들은 착한’ 사회적 비영리 기업. 환경에 이로운 일을 하고(또는 하려고 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어떤 활동을 한다. 역시나 동료들은 착하지만, 어떤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다른 노동자들에게 잘 대해주는 IT 기업들. 정리해고를 주도한 사람들에게 나중에 인센티브를 주는 IT 기업들. 그리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짓을 뒤에서 한다. 나의 짧은 한 번의 경험이 전부는 아니겠지, 그렇겠지, 하면서도 어디에 몸담고 싶은지 완전히 길을 잃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