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는 이제 일기와 메모와 날 것의 무언가가 점점 쌓여간다.
명심할 것들. 1. 정신과 신체의 연결감 붙잡기 2. 세상과 나의 연결감 붙잡기 3. 내가 세상, 자연의 일부임을 의식적으로 느끼기 4. 강박, 불안,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는 어떤 행위를 하기보다 숨을 쉬는 데 집중하기 5. 하루에 책 읽는 시간 확보하기 / 취침 전에는 휴대폰을 멀리하고 책을 가까이에 6. 되도록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칼을 쓰고 불을 쓰는 요리 해서 먹기 7.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산책
앞으로의 목표(?) 1. 사람들과 자주 포옹하기 2. 제대로 섬세하고 제대로 다정한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를 먼저 돌보기 3. 몸을 쓰는 새로운 걸 배우기 4. 몸과 정신에 쌓인 독기 주기적으로 해소하기 5. 가능성과 상상력을 활짝 열어두기
산책하면서 문득 했던 생각인데, 2013년도의 나는 2016년도의 나를 몰랐고, 2016년도의 나는 2021년도의 나를 몰랐고, 2021년도의 나는 2025년도의 나를 몰랐다. 좋거나 나쁘거나 삶은 한 번도 내가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알고 있는 것들, 지금 생각하는 가능성들 바깥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다. 오늘도 친구와 대화하면서 느낀 것인데, 그러니까 결국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 그리로 뚜벅뚜벅 가는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스트레스가 쌓여 간식을 주워 먹다가 몸과 정신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스트레스 받았다는 걸 인정하고 몸에 들어간 긴장을 내려놓고 숨을 쉬니까 내려놓는 게 가능했다. 대체로 간식이 필요한게 아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스트레칭과 요가 동작을 하며 뭉친 곳을 구석구석 살피다 보면 차분해진다. 살면서 몇 번이나 깨닫고 잊어버리고, 깨닫고 잊어버리고 한다. 대체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타이밍은 몸과 마음이 멀리 떨어져 버렸을 때다.
집 근처에 좋아하는 약선 음식점이 갑자기 폐업해서 마음이 많이 심란했더랬다. 그곳은 1인 가구에게 빛과 소금 같은 된장찌개와 비건 친화적인 보양식을 파는 곳이었다. 한식이 죽도록 먹고 싶지만 요리할 기력은 없을 때, 뜨끈뜨끈한 국물을 몸이 필요로 할 때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1인 가구에게 한식은, 무슨 드래곤볼을 모으는 것처럼 각종 채소가 필요한데 딱 하나씩만 살 수는 없고, 눈 딱 감고 채소를 잔뜩 사면 어느새 시들시들해지는 채소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그런 분야다.) 오늘 친구와 동네를 산책하다가 친구가 '어, 저기에 약선 음식점이 있다!'하고 소리쳤다. 와 세상에.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니. 매일 같이 지나다니는 동네에서 못 보고 지나쳤다니. 정확히는 평소와 조금 다른 길로 걸었을 뿐인데. 그곳에 나의 오아시스가 건재했다니.
이 음식점과 나의 인연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첫 만남은 대학생 시절 경복궁역 인근이었다. 친구들과 경복궁 근처에서 만나며 가격이 합리적이고 맛있는 한식집을 알아봤는데, 그게 이 약선 음식점이었다. 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모두 만족스럽게 견과류 된장찌개와 쌈밥을 먹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웠던 기억만 가지고 막상 다시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6~7년 뒤에, 외할머니가 사셨다는 이유로 이사를 결심한 동네에서, 집 앞 시장 골목에서 이 약선 음식점을 다시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 식당과 나는 운명의 붉은 실 같은 걸로 연결된게 아닐까. 이건 진짜 특별한 인연이다. 3번이나 재발견했으니까 이건 무슨 한식의 신이 나에게 가호를 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나름) 넓고 넓은 서울 안에서, 집 앞에서 이 식당을 다시 마주할 확률을 계산하면 얼마일까.
그런 이유로 내일 점심 메뉴는 견과류 된장찌개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인스타 팔로우 중이던 요리 연구가분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계정주분이 할머님과 제철 요리를 만드는 모습이 굉장히 행복해 보였었는데. 추모의 마음을 남기고 계정 링크를 타고 들어가보니 생전 할머님의 레시피로 만든 오이지를 판매하고 계셨다. 소금과 오이만 들어간 깔끔한 오이지. 오이지를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오이지를 구매했고(그냥 먹고 싶었다), 오늘 도착한 오이지를 먹어보니 여름 맛이 났다. 이 맛 무슨 맛인지 알지. 여름 방학마다 찾아갔던 외할머니댁에서 반찬 하라고 내어주시던 오이지 맛과 비슷했다.
단골 카페에서는 봄맞이 한정 메뉴로 비건 완두 빙수를 출시했다. 완두 콩포트를 오트유 얼음에 비벼 크게 한 입 먹었다. 익숙한 향인데 무슨 향이더라. 아침마다 등산할때 맡는 봄 냄새랑 똑같았다.
제철 음식의 영험한 효과를 몸소 느끼며 먹고 싶은 걸 먹는게 큰 기쁨이구나. 즐거움은 엄청난 성취에만 있는게 아니구나. 성취나 일과 거리가 있는 영역의 삶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그 삶이란 대략 이런 삶이 아닐까.